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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년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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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년을 맞이하며

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최희선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이면 생각나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고 있지만 3월 26일이 그의 순국일이라는 점은 아직은 생소하게 느끼는 듯하다. 3월 26일은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우리민족의 역적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순국한 지 114년이 되는 뜻깊고도 가슴이 시린 날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순흥안씨 가문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가 대지주에 미곡상으로 부유한 유년기를 보냈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천주교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배웠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운동을 하기 위해 상하이로 갔으나, 상하이의 유력자들과 천주교 신부들로부터 협조를 거절당하여 실망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한때 석탄상회를 경영하였으나, 교육을 통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전 재산을 바쳐 삼흥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운동을 시작하였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처참한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였고, 그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6발의 총을 발사하여 그의 가슴과 옆구리와 복부에 명중시키고,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을 만큼 큰 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치고 그 후 당당히 체포에 응하였다.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침체되어 있던 항일 운동에 큰 울림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 뤼순형무소에 수감되어 6차례 재판 끝에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그 해 3월 26일 수감된 지 114일 만에 31세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아직 채 꽃 피워보지도 못한 영웅을 우리는 떠나보내야 했다.

 

안중근 의사가 동포들에게 남긴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이 말에는 독립을 향한 그의 열망, 조국을 향한 그의 애국심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1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영웅인 그가 가진 유일한 바람, 조국으로 돌아오고픈 소망이 유해가 묻힌 곳을 찾을 수 없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오늘 부는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그의 유해가 조국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더불어 올해 순국 114주년을 맞아 대한독립의 의지를 불태운 그의 고귀한 위국헌신의 정신을 우리 모두 본받아 개인의 안위를 넘어 나라와 민족,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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