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일)
[기획연재 : 이야기 문학] Ⅳ. 비평이야기(1)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47호에 이어서>
일차적 이해(기호들 해독)와 이차적 이해(해석적 읽기, 평가적 읽기)란 결국 반성적 사고인 비평적 사고력을 동원해서 문학텍스트의 의미를 이해→감상(해석)→평가(분석, 종합, 추론:논리적 사고) →자기화(반성적 사고)→비젼 모색(새로운 의미 생산+윤리적 성찰 행위)의 과정을 말한다. (김재봉, 선주원<글쓰기와 화법>형설출판사, 2006, pp165-168)
4) 문학텍스트의 구성을 분석하며 읽기
문학텍스트의 구성은 패러다임(연합)론적 축과 신태그마(통합)론적 축을 둘러싼 두 가지 방향의 분석으로 밝힐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언어 표현은 Ⓐ여러 요소가 모여 있는 집합에서 그 담론에서 이용할 하나의 요소를 선택하고(패러다임적 선택), Ⓑ그 요소들(단어, 어절 등등)이 의미론적으로 보아 올바른 연쇄를 형성하도록(신태그마론적 결합)함으로써 생겨난다. 로트만은 예술 텍스트란 ‘자연언어’나 ‘비예술 텍스트’와 달리 이 두 개의 축에 입각해 생각할 때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우선 ①패러다임적으로 일상의 자연언어로는 결코 같은 것으로 인지되지 않는 것을 동등하게 만들어 버리고, ②신태그마론적으로는 자연언어에서는 결합될 수 없는 것을 결합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성의 경향은 시의 구성적 원리로, 결합성의 경향은 산문적 원리로 해석할 수 있다고”고 했다.
이러한 현상이 문학 텍스트에서 발생하는 것은 문학 텍스트의 각 요소가 가지는 의미가 의도적으로 구성된 텍스트에서는 결코 일의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즉, 문학 텍스트에서 각 요소의 구성적 의미는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이질적인 코드를 통해 얻어진다. 이를 문학 텍스트에서 코드의 변환 기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코드 변환도 역시 신태그마(결합)와 패러다임(선택), 이렇게 두 축에 따라 나타나게 된다. 문학 텍스트의 수용은 처음부터 끝을 향하는 선적인 시간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태그마론의 축에 따라 독자는 우선 씌어 있는 것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고(통상의 언어 코드), 다음으로 자기의식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일정한 문화적 코드(코드군=장르․제재의 유형이나 형태․서사 전개의 형태․시인지 산문인지의 판별 등)로 연결되는 표시를 독해하면서 어떤 때는 ‘기대 지평’(독자 기억의 콘텍스트, 야우스의 개념, 어떤 주어진 시기의 문학텍스트들을 평가하기 위해 독자들이 사용하는 기준)에 기초하여 그것을 수정하고 의미를 추가하면서 일정한 체계 속에 텍스트를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것이 ‘내적 코드 변환’이다.
그러나 한번 어떤 해독 코드를 선택해 버리면 예술적 텍스트에서는 거기에 맞지 않고 해독될 수 없는 요소가 나타난다. 물론 그것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여러 유형들이 어떤 동일성을 환기하면서 마치 하나의 체계처럼 나타나면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거기서 독자는 패러다임론의 축(등가성의 축)에 따라 같은 요소에 대해 다른 코드를 선택하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제2의(혹은 제3, 제4……의)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그때까지 만들어 온 체계에 겹쳐 서로 갈등하게 하면서 읽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외적 코드 변환’이다. 그 결과는, 이전의 판단이나 해독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의식 속에 있던 코드를 재편성하게 된다.
이러한 조작을 거듭해 나가다 보면 문학 텍스트 안에서는 통상 다르다고 생각되었던 요소 안에 유사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반대로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요소 안에서 특수한 차이가 발견된다. 이리하여 텍스트 구성으로 이질적인 것을 동등화하는 기능과 통합 불가능한 것을 결합하는 자유로운 언어 운동의 장이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학 텍스트의 다양한 차원에서 구성의 양상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문학 텍스트의 디스쿠르("나는……”하고 발화하는 또 한 사람의 나)가 어떻게 자기 조직화 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이러한 조작을 하려면 텍스트를 이산적인 단위로 분절화하면서 각 단위의 기능을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된다.<매혹의 인문학 사전>(앨피 2009)pp144-147 발췌.